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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숙 - 낙엽을 받다시(詩)/허영숙 2014. 2. 27. 11:43
너는 너무 늦게 온 편지여서 답장을 쓸 수가 없네
가을 비 그친 산길
어지럽도록 환하게 쏟아지는 빛깔을
눈으로 다 받을 수 없어
어룽어룽 안개가 산빛을 숨기고 있을 때
나무 사이를 떠돌던 바람이 던지고 간
이파리 한 장 손으로 받았네
그건, 푸른 시절을 비우고
제 생의 얼룩을 군데군데 껴안고 지는 은유가 많은 문장
짧은 생을 깊게 살다간 곡진한 몸짓이네
나는 너 보다도 더 오래 살았으나
아직도 가을이면 걸음을 늦추고 싶네
빼곡한 마당에 자꾸만 세간을 들여놓고
길을 지우고 있는 잎의 무덤들은
일부러 돌아서 가고 싶어지네
다시 날아간다. 차마 한 줄의 답장도 쓸 수 없는
한 통의 편지
텅 빈 손바닥에는 소인조차 희미한 푸른 날의 안부가
그렁그렁 쌓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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