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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숙 - 나는 저녁 불빛을 사랑하였다시(詩)/허영숙 2014. 2. 27. 11:42
마음에 없는 이별을 하는 사람처럼
노을의 눈자위가 붉어진다
쪼그려 앉는 꽃들
한 쪽 어깨가 기울고 있는 나무
이 서글픈 틈새를 저녁이라 불러놓고
어둠이 불빛을 조금씩 모으고 있다
악수도 없이 헤어진 사람에 대해서
어딘가에 이마를 기대지 않고는 말 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창가에 불빛을 내건다
그러면 하늘은 늦도록 꺼지지 않는 불빛을 하나 둘 거두어간다
별이 뜬다
저것은 먼데서 오는 불빛
풀씨 한 점 보이지 않을 만큼 다 저물고 난 뒤에도
또 저무는 마음을 견딜 수 없어
누가 하늘에 이마를 기대고 있다
나도 한 때
그 저녁의 불빛을 사랑하였다(그림 : 이완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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