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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시(詩)/조용미 2014. 1. 17. 20:16
폭우가 쏟아지는 밖을 내다보고 있는
이 방을 능우헌(凌雨軒)이라 부르겠다
능우헌에서 바라보는 가까이 모여 내리는
비는 다 직립(直立)이다
휘어지지 않는 저 빗줄기들은
얼마나 고단한 길을 걸어 내려온 것이냐
손톱이 길게 쩍 갈라졌다
그 사이로 살이 허옇게 드러났다
누런 삼베옷을 입고 있었다
치마를 펼쳐 들고 물끄러미 그걸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입은 두꺼운 삼베로 된 긴 치마
위로 코피가 쏟아졌다
입술이 부풀어올랐다
피로는 죽음을 불러들이는 독약인 것을
꿈속에서조차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일까
속이 들여다보이는 창(窓)봉투처럼
명료한 삶이란
얇은 비닐봉지처럼 위태로운 것
명왕성처럼 고독한 것
직립의 짐승처럼 비가 오래도록 창밖에 서 있다
(그림 : 박항율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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