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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걸음으로 지하철 의자에 앉는다지나는 낯빛에서 이끌려오는 윤곽이 흐릿하다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지만 번번이 전송되지 않는다,
이상하다 전생 어딘가 마주친 것 같은 사람들,
지상의 계단을 바삐 오르내리고 있다
길을 잃은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어두운 터널과 터널 사이 그 빈 공간까지 바람이 날리고
상여같이 환한 전철이 들어온다
발걸음이 예서제서 쏟아졌으나 좀처럼 타고 싶지 않다
여기가 세상을 가둔 종점이던가, 출입문이 덜컹 닫히자
둥근 고리들 차례차례 허공에제 몸을 증거처럼 끼워 넣는다
손목시계를 보다가 플랫폼을 거닐다가 사람들 사이를 배회하다가
어둑한 구석에 다시 앉는다
누군가 애달프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일기장, 편지, 메모들은 건너편 붉은 소화전 속 비닐에 싸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운 것은 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도무지 판독할 수 없는, 적막을 향해 검은 레일이 지나고 있다
서늘한 터널 위에서 내려다본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녹화 테이프가 수없이 되돌려 재생되고 있는 CCTV 안,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그림 : 남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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