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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택 - 쓸쓸한 연애시(詩)/윤성택 2014. 1. 17. 18:37
백사장 입구 철 지난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듯
얽매여 군데군데 찢겨진 채였다
기어이 그녀는 바다에 와서 울었다
버려진 슬리퍼 한 짝과 라면봉지,
둥근 병 조각조차 추억의 이정표였을까
해질 녘 바위에 앉아 캔맥주 마개를 뜯을 때 들리는 파도소리,
벌겋게 취한 것은서쪽으로 난 모든 창들이어서
그 인력권 안으로 포말이 일었다
유효기간 지난 플래카드처럼 매여 있는 것이 얼마나 치욕이냐고,
상처의 끈을 풀어준다면 금방이라도 막다른 곳으로 사라질 것 같은 그녀
왜 한줌 알약 같은 조가비를 모아 민박집 창문에 놓았을까,
창 모서리까지 밀물 드는 방에서 우리는 알몸을 기댔다
낡은 홑이불의 꽃들이 저녁내 파도 위를 밀려왔다가 밀려갔다
그녀가 잠든 사이, 밖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처럼 바람이 불었다
꺼질 듯한 모닥불에 마지막으로 찢겨진 플래카드를 던져 넣었다
(그림 : 임기종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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