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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성택 - 구두로 말하길
    시(詩)/윤성택 2014. 1. 17. 18:24

     

    밤이 보도블록에 갇히면 계단이 몰려온다.

    그때마다 건물의 모서리가 한장씩 넘겨진다. 

    막 접힌 갈피 길이 깡통을 끼고 있다. 

    차버린 것은 잘못이 오래 전 상처한 자전거가 보관소에 몸을 묶어 자해중이다. 

    여자는 울면서 떼어낸 발끝의 수화기를 내려놓을 곳이 없다. 

    뎅뎅뎅 물방울무늬 짧은치마가 바람에 흔들린다. 

    차단기 내려지고 성급한 기차는 관음증으로 밝다.

    담쟁이가 우르르 헝겊처럼 방음벽을 흘러내린다. 

    아파트 창들은 잘 닦여 빛나는 밤의 광이다.

    구두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굳게 다물었던 침묵의 틈서리가 열리자 밖은 연신 비가 내렸다. 

    신고 벗고 때론 뒤를 구겼을 날을 고스란히 필사해 놓은 걸까. 

    좁은 골목 같은 잔금 어딘가, 한번쯤 길을 잃었던 것도 같다.
    그때 잘못 든 길이 이 길이었노라고 앙 다물지 못한 구두는 기어이 길을 낸 터였다.

    가죽과 밑창 사이, 축축한 검은 혀의 양말이 질척였다.

    사내는 구두를 쫙 벌리더니 이게 적게 벌어진 겁니까?  단 한 번의 구두로 제압했다.

    꼼짝없이 기다리는 동안, 컨테이너박스 수선집에서 나도 구두처럼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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