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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택 - 꽃이 피다시(詩)/윤성택 2014. 1. 17. 18:21
1공사장 모퉁이 플라타너스가 표지판으로 아랫몸을 가리고 서 있다.
인부는 어디로 갔는지 퍼런 철근들이 저희끼리 묶여 있다.
간간이 잡초들만 바람을 불러모아 수근거릴 뿐,
계절을 문신한 잎새 하나 후미진 골목에서 뛰어오다 멈춰 선다.
늙은 전신주가 제 힘줄로 끌어 모은 낮은 집들 너머,
잠시 정전이 되는 하늘에는 길을 서두르는 먹구름이 송신탑에 걸려 있다.
2전기 스토브가 덜 마른 속옷에게 낯빛을 붉힌다.
형광등이 한낮을 키우며 시들지 않는 것들을 읽어낸다.
두통에 시달리다보면 꽉 잠가지지 않는 수돗물이 웅크려 떨어지고,
거리를 배회하던 빗소리 굵어진다.
몇 알의 감기약 삼키자 빗물이 휘청휘청 진눈깨비로 주저앉는다.
미술학원 창가, 젖은 스케치북 밑그림 밖으로 봄꽃들이 번져 나온다.
스위치를 내리면 발끝까지 환하게 불이 들어올 것만 같아,유폐된 이 공간, 숲으로 가득 차 나뭇잎마다 뚝뚝 빛을 튕겨낼 것만 같아,
온몸에 열꽃 만발한 밤, 창가 성에를 지우며 산수유나무 붉은 알전구 반짝이고.
(그림 : 김한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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