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천 - 볼펜은 왜 다시 연필이 되었나시(詩)/박상천 2013. 12. 30. 09:46
부드럽고 편안한 나날이었다.
지우개는 그 흔적을 지우지 못해 볼펜은 언제나 볼펜으로 남아있었다.
그는 자신을 결코 깎지 않았지만 그는 점점 낡아갔다.빈 가슴에는 잉크를 채워도 채워도 늘 부족했다.
항상 빈 가슴으로 남게 되는 스스로 버린 자신을 보았다.
추하게 낡으며 살아가지 않고 스스로를 깎아 사라지는 방법을 생각했다.볼펜은 더 이상 잉크를 채우는 일을 포기하고 자신의 몸에 칼을 들이밀어 남은 잉크마저 쏟아버렸다.
빈 가슴에 새 살이 돋아오르고 그는 자신의 몸을 조금씩 깎아가며 사는 연필이 되었다.지우개는 또한 불필요한 그의 흔적을 지워주었다.
'시(詩) > 박상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상천 - 낡음의 평화에 대하여 (0) 2013.12.30 박상천 - 연필은 왜 볼펜이 되었나 (0) 2013.12.30 박상천 - 슬픔의 정체 (0) 2013.12.30 박상천 - 눈물은 우리의 마음을 씻어주네 (0) 2013.12.30 박상천 - 지나치지 않음에 대하여 (0) 2013.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