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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초 - 골목
    시(詩)/이병초 2013. 12. 26. 14:20

     

     

    흙담 밑을 쪼옥 따라서 채송화가 피었다

    죽순 토막들이 껍질째 뒹군다

    물지게 진 안짱다리들이

    싸리울 뚫고 나온 돼지새끼들에게

    뒤뚱거리고, 돈 좀 달라고 띵깡 부렸간디

    니미 팔어서 주끄나! 하는 소리 쩡쩡 울리고

    경숙이 누나 연애편지를 유님이 누나에게 줬다고

    직사하게 욕 얻어먹었어도

    아침이면 싸리비질 등살에 흙냄새가 새로웠다

    명수 형이 누렁소 팔아먹고 무릎 끓고 용서 빌던 골목

    발통기 피댓줄에 손목 바스라진 용남이 삼촌이

    창백하게 들어서던 골목

     

    젖은 짚 태우는 냄새 꽁보리밥 짓는 냄새

    쇠죽 쓰는 냇내를 안쪽으로 끌어들이며 옷거티로

    아랫거티로, 구판장으로, 앞시암으로,

    덕호네 집 꼭대기로 탯줄같이 뻗어간 골목

    똥개 한 마리가 짖으면 동네 똥개란 똥개는 다 깽깽거려서

    발 디딜 틈이 없던, 그 통에 '전설 따라 삼천리'

    유기현 목소리가 팍 꺾이던

    저 잡녀르 것덜 된장 발라버리자고 입똥내 튀던 골목

    된장 발라 버릴 것덜이 똥개덜 뿐이겄냐고

    누가 또 없는 비료값 물리능갑다고

    애먼 골마리나 추어 쌓던 골목

     

    함 사시오! 악쓰고 떼쓰는 발밑에 흰 봉투 깔리고

    갈목떡 땜시 사타구니가 가래톳 섰다는 형들이

    우당탕탕 지게작대기에 쫓기고,

    꽃상여가 사람들을 줄래줄래 물고나오던 골목

    주 씨네 감꽃들이 주울똥말똥 떨어져 있던 골목

    (그림 : 이원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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