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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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 삼남(三南)에 내리는 눈시(詩)/황동규 2013. 11. 24. 19:00
봉준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목매었으련만, 대국 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그림 : 신재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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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 시월시(詩)/황동규 2013. 11. 24. 18:59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 날 가졌던 슬픈 여정(旅程)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라. 2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리 두견이 우는 숲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목금(木琴)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 3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한 탓이리. 4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 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5 낡은 단청(丹靑)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히 비가 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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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 즐거운 편지시(詩)/황동규 2013. 11. 24. 18:56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속을 헤매일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옆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그림 : 최정길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