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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동규 - 시월
    시(詩)/황동규 2013. 11. 24. 18:59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 날 가졌던 슬픈 여정(旅程)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라.


    2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리
    두견이 우는 숲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목금(木琴)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


    3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한 탓이리.


    4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 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5
    낡은 단청(丹靑)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히 비가 뿌려와서.....
    절 뒷울 안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낙엽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켜지기
    시작하는 등불들이 어스름속에서 알 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6
    창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그림 : 장태묵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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