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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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 유등(流燈)시(詩)/정호승 2015. 10. 2. 22:43
등불 하나 강물에 떠나보내지 않고 어찌 강물을 사랑했다 하랴 강물에 등불 하나 흘려보내지 않고 어찌 등불을 사랑했다 하랴 떠나가지 않으면 떠나보내리라 흘러가지 않으면 흘려보내리라 강가의 가난한 사람들이 외로운 술집이 되어 가슴마다 술 마시는 밤 밤하늘을 헤엄치는 푸른 물고기들이 떼지어 강물에 뛰어내려 등불의 길을 따른다 부디 흐르는 강물에 칼을 꽂지 말아다오 누가 무너지는 촉석루를 껴안고 울고 있는가 지나가는 사람은 지나가게 내버려두고 떠나가는 사람은 떠나가게 내버려두고 유등(流燈)이여 그대 별들과 함께 가서 죽는 곳은 어디인가 나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지막 남은 등불 하나 바다에 바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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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 바닥에 대하여시(詩)/정호승 2015. 9. 23. 13:22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굳세게 딛고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그림 : 우용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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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수선화에게)시(詩)/정호승 2015. 5. 28. 00:47
그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내리면 눈길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라 갈대숲속에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있다 그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가끔씩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신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산그림자도 외로움에 겨워 한번씩은 마을로 향하며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우는 것도 그대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그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공연이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그대 울지마라 (그림 : 김경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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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 우리가 어느 별에서시(詩)/정호승 2015. 5. 27. 18:31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그림 : 백중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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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 아버지의 나이시(詩)/정호승 2014. 6. 16. 12:22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번씩 불러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그림 : 정인성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