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이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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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림 - 솔바람 소리 속에는시(詩)/이가림 2015. 5. 30. 09:16
솔바람 소리 속에는 뒤돌아, 뒤돌아보며 떠나간 사내의 못내 아쉬운 마지막이 보이는 듯 보이는 듯도 하여라 솔바람 소리 속에는 우우우, 우우우 밀려가던 아우성의 목메인 성난 물결이 살아나는 듯 살아나는 듯도 하여라 솔바람 소리 속에는 지나가, 지나가 버려 다 잊어버린 어메의 이젠 서러울 것조차 없는 한평생이 흐느끼는 듯 흐느끼는 듯도 하여라 솔바람 소리 속에는 산비탈 기어올라 칡뿌리 캐던 어린날의 푸른 상채기뿐인 얼굴이 숨어 있는 듯 숨어 있는 듯도 하여라 솔바람 소리 속에는 기어이, 기어이 피어나고야 말 그리움의 먼 강물 같은 이야기가 흘러가는 듯 흘러가는 듯도 하여라 (그림 : 김복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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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림 - 찌르레기의 노래 3시(詩)/이가림 2015. 5. 17. 18:14
지상의 오막살이 집 한 채 그 아궁이에 기어드는 가랑잎같이 그대 따스한 슬픔에 내 언 슬픔을 묻을 수 있다면 이 세상 밤길 뿐이었던 나날들 언제나 캄캄했다고 말하지 않으리 우리가 정녕 생의 거미줄에 매달린 하나가 되기 위한 두 개의 물방울 같이 마주보는 시선의 신비로 다가간다면 번개불 번쩍 내리쳤다 스러지는 그 찰나 그 영원 속에 별 머금은 듯 영롱한 눈물의 보석 하나 아픈 땅에 떨굴 수 있으리 지상의 오막살이 집 한 채 그 아궁이에 기어드는 가랑잎같이 오늘밤 화알활 피어나는 그대 모닥불 품에 내 사그러져가는 영혼의 숯을 태우고 말리 (그림 : 남택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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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림 - 우는 사내시(詩)/이가림 2015. 5. 17. 15:29
말매미란 이름의 사내가 우는 까닭은 아무리 울어도 속이 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름 없는 세상으로 달아날 비겁한 궁리를 해본 적은 없다 우는 일밖에 달리 할 일이 없는 그에게 이 아우성 세상이야말로 가장 살 만한 곳, 비록 잃어버린 반쪽을 찾지 못할지라도 울기를 멈출 수 없다 말매미란 이름의 사내가 우는 까닭은 아무리 울어도 메스꺼운 존재의 불해잉 목구멍에 자꾸만 차오르기 때문이다 아니 무작정 울다 보면 몸이 한결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그림 : 안호범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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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림 - 내 마음의 협궤열차시(詩)/이가림 2015. 5. 17. 15:24
측백나무 울타리가 있는 정거장에서 장난감 같은 내 철없는 협궤열차는 떠난다 너의 간이역이 끊어진 철교 그 너머 아스라한 은하수 기슭에 있다 할지라도 바람 속에 말달리는 마음 어쩌지 못해 열띤 기적을 울리고 또 울린다 바다가 노을을 삼키고 노을이 바다를 삼킨 세계의 끝 그 영원 속으로 마구 내달린다 출발하자마자 돌이킬 수 없는 뻘에 처박히고 마는 내 철없는 협궤열차 오늘도 측백나무 울타리가 있는 정거장에서 한 량 가득 그리움 싣고 떠난다 (그림 : 박태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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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림 - 석류시(詩)/이가림 2014. 3. 2. 12:01
언제부터 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텅 빈 가슴 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 지난 여름 내내 앓던 몸살 더 이상 견딜 수 없구나 영혼의 가마솥에 들끓던 사랑의 힘 캄캄한 골방 안에 가둘 수 없구나 나 혼자 부둥켜안고 뒹굴고 또 뒹굴어도 자꾸만 익어가는 어둠을 이젠 알알이 쏟아놓아야 하리 무한히 새파란 심연의 하늘이 두려워 나는 땅을 향해 고개 숙인다 온몸을 휩싸고 도는 어지러운 충만 이기지 못해 나 스스로 껍질을 부순다 아아, 사랑하는 이여 지구가 쪼개지는 소리보다 더 아프게 내가 깨뜨리는 이 홍보석의 슬픔을 그대의 뜰에 받아주소서. (그림 : 성지민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