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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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 돌아와 보는 밤시(詩)/윤동주 2014. 3. 2. 18:49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延長)이옵기에―― 이제 창(窓)을 열어 공기(空氣)를 밖구어 드려야할턴데 밖을 가만이 내다 보아야 방(房)안과 같이 어두어 꼭 세상같은데 비를 맞고 오든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로의 울분을 씻을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사상(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그림 : 권옥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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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 또 다른 고향시(詩)/윤동주 2014. 3. 2. 18:47
고향(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宇宙)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 백골(白骨)을 들여다 보며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백골(白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志操) 높은 개는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백골(白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故鄕)에 가자. (그림 : 권옥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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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 참회록시(詩)/윤동주 2014. 3. 2. 18:46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줄에 줄이자 - 만이십사년일개월(滿二十四年一個月)을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그림 : 권옥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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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 쉽게 씌어진 시 (詩)시(詩)/윤동주 2014. 3. 2. 18:45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學費) 봉투(封套)를 받아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