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박재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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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 - 무봉천지(無縫天地)시(詩)/박재삼 2013. 12. 14. 14:06
저저(底底)히 할말을 뇌일락하면 오히려 사무침이 무너져 한정없이 멍멍한 거라요. 문득 때까치가 울어 오거나 눈은 이미 장다리꽃밭에 흘려 있거나 한 거라요. 비 오는 날도, 구성진 생각을 앞질러 구성지게 울고 있는 빗소리라요. 어쩔 수 없는 거라요. 우리의 할 말은 우리의 살과 마음 밖에서 기쁘다면 우리보다 기쁘고 슬프다면 우리보다 슬프게 확실히 쟁쟁쟁 아지랭이 되어 있는 거라요. 참, 그 때, 아무도 없는 단오의 그네 위에서 아뜩하였더니, 절로는 옷고름이 풀리어, 사람에게 아니라도 부끄럽던거라요. 또는 변학도에게 퍼부을 말도 그 때의 장독진 아픔의 살이, 쓰린 소리를 빼랑빼랑 내고 있던 거라요. 허구헌 날 서방님 뜻 높을진저 바라면, 맑은 정신 속을 구름이 흐르고 있었고, 웃녘에 돌림병이 퍼져 서방님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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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 - 가을비시(詩)/박재삼 2013. 12. 14. 14:04
가을 아득한 들판을 바라보며 시방 추적추적 비 내리는 광경을 꼼짝없이 하염없이 또 덧없이 받아들이네. 이러구러 사람은 늙는 것인가. 세상에는 볕이 내리던 때도 많았고 그것도 노곤하게 흐르는 봄볕이었다가 여름날의 뜨거운 뙤약볕이었다가 하늘이 높은 서늘한 가을 날씨로까지 이어져 오던 것이 오늘은 어느덧 가슴에 스미듯이 옥타브도 낮게 흐르네. 어찌보면 풀벌레 울음은 땅에 제일 가깝게 가장 절절이 슬픔을 먼저 읊조리고 가는 것 같고 나는 무엇을 어떻게 노래할까나. 아, 그것이 막막한 빈 가을 빈 들판에 비 내리네. (그림 : 신창대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