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김영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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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 금호강시(詩)/김영랑 2014. 4. 13. 10:33
언제부터 응 그래 저 수백리를 맥맥히 이어받고 이어가는 도란 물결소리 슬픈 어족(魚族) 거슬러 행렬하는 강 차라이 아쉬움에 내 후련한 연륜과 함께 맛보듯 구수한 이야기 잊고 어드맬 흘러갈 금호강 여기 해뜨는 아침이 있었다 계절풍과 더불어 꽃피는 봄이 있었다 교교히 달빛 어린 가을이 있었다. 이 나룻가에서 내가 몸을 따루며 살았다. 물소리를 듣고 잠들었다. 오랜 오늘 근이는 대학을 들고 수방우와 그리고 선이가 죽었다는 소문이 도시 믿어지지 않은, 이 나룻가 오릇한 위치에 내 홀로 서면, 지금은 어느 어머니가 된 눈맵시 아름다운 연인의 이름이, 아직도 입술에 맵돌아 사라지지 않고, 이 나룻가 물을 마시고 받은 내 청춘의 상처 아- 나의 병아 (그림 : 조규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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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 불지암(佛地庵)시(詩)/김영랑 2014. 4. 13. 10:31
그 밤 가득한 山정기는 기척없이 솟은 하얀 달빛에 모두 쓸리우고 한낮을 향미로우라 울리던 시냇물 소리마저 멀고 그윽하여 衆香의 맑은 돌에 맺은 금이슬 구을러 흐르듯 아담한 꿈 하나 여승의 호젓한 품을 애끊이 사라졌느니 천년 옛날 쫓기어간 신랑의 아들이냐 그 빛은 청초한 수미山 나리꽃 정녕 지름길 섯드른 흰옷 입은 고운 소년이 흡사 그 바다에서 이 바다로 고요히 떨어지는 별살같이 옆산 모롱이에 언뜻 나타나 앞골 시내로 사뿐 사라지심 승은 아까워 못 견디는 양 희미해지는 꿈만 뒤쫓았으나 끝없는지라 돌여 밝은 날의 남모를 귀한 보람을 품었을 뿐 토끼라 사슴만 뛰어보여도 반드시 기려지는 사나이 지났었느니 고운 輦의 거동이 있음직한 맑고 트인 날 해는 기우는제 승의 보람은 이루었느냐 가엾어라 미목청수한 젊은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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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 모란이 피기까지는시(詩)/김영랑 2014. 3. 7. 14:14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서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그림 : 이영식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