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고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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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 - 한바탕 잘 끓인 추어탕으로시(詩)/고재종 2014. 7. 11. 00:33
우리 동네 성만 씨네 산다랑치논에, 그 귀퉁이의 둠벙에, 그 옆 두 엄 자리의 쇠지랑물 흘러든 둠벙에, 세상에, 원 세상에, 통통통 살 벤 누런 미꾸라지들이, 어른 손가락만한 미꾸라지들이 득시글벅시글거 리더라니, 그걸 본 가슴팍 벌떡거린 몇몇이, 요것이 뭣이당가, 요것이 뭣이당가, 농약물 안 흘러든 자리라서 그런가벼, 너도 나도 술렁대며 첨벙첨덩 뛰어들어, 반나절 요량을 건지니, 양동이 양동이로 두 양동 이였겄다! 그 소식을 듣곤, 동네 아낙들이 성만 씨네로 달려오는데, 누군 풋배 추 고사리를 삶아오고, 누군 시래기 토란대를 가져오고, 누군 들깨즙 을 내오고 태양초물을 갈아오고, 육쪽마늘을 찧어오고 다홍고추를 썰 어오고, 산초가루에 참기름에 사골에, 넣을 것은 다 넣게 가져와선, 세상에, 원 세상에,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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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 - 애진 것들 애진 것끼리시(詩)/고재종 2014. 7. 11. 00:15
우체부조차 오지 않는 날이면 집 뒷산 억새밭에 들어 거기 우수수 날아오르는 붉은머리 오목눈이떼에 섞일 일이다 금방 부서져버릴 듯한 쓸쓸함 같은 것 소소소 일렁이는 그 터전에 또다시 날아내리는 그들의 양식이 찔레덤불의 빨간 열매 몇개인들 어떠랴 그 씻기는 터전에선 늘 바람이 일고 바람 일면 시린 코와 부릴랑은 가슴의 깃털 속에 부비다가 햇빛 환한 날이면 톡톡톡 온기 몇점 서로 쪼아보기도 하지만 밤톨만한 그들은 언제나 혼자가 아니다 또 몇놈은 서로 쫓고 쫓기는 사랑놀음도 행여 잊지 않는다 누구하나 호명해볼 이 없는 날 아,씻기는 씻기는 억새밭에 들어 거기 너무 애진 것들 애진 것들끼리 모여 해종일 우수수 날아오르고 날아내리는 그 반짝이는 숨결들 속에 섞이면 내 소슬한 가슴 속에서도 그리움의 잎새같은 것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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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 - 눈물을 위하여시(詩)/고재종 2014. 5. 11. 12:22
저 오월 맑은 햇살 속 강변의 미루나무로 서고 싶다 미풍 한자락에도 연초록 이파리들 반짝반짝, 한량없는 물살로 파닥이며 저렇듯 굽이굽이, 제 세월의 피를 흐르는 강물에 기인 그림자 드리우고 싶다 그러다 그대 이윽고 강둑에 우뚝 나서 윤기 흐르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며 저 강물 끝으로 고개 드는 그대의 두 눈 가득 살아 글썽이는 그 무슨 슬픔 그 무슨 아름다움을 위해서면 그대의 묵묵한 배경이 되어도 좋다 그대의 등 뒤로 돌아가 가만히 서서 나 또한 강끝 저 멀리로 눈 드는 멀쑥한 뼈의 미루나무가 되고 싶다 (그림 : 이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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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 - 숲의 묵언시(詩)/고재종 2014. 5. 11. 12:18
숲은 아무 말 않고 잎사귀를 보여준다. 저 부신 햇살에 속창까지 길러 낸 푸르른 투명함 바람 한 자락에도 온 세상 환하게 반짝이며 일렁이는 잎새 앞에서 내생 맑게 씻어 내고 걸러 낼 것은 무엇인가 숲은 아무 말 않고 새소리를 들려준다. 저것이 어치인지 찌르레기인지 소리 떨리는 둥그런 파문 속에서 무명의 귀청을 열고 들어가 그 무슨 득음을 이루었으면 한다 숲은 그러자 이윽고 꽃을 흔들어 준다 어제는 산나리꽃 오늘은 달맞이꽃 깊은 골 백도라지조차 흔들어 주니 내 생 또 얼마나 순해져야 맑은 꽃 한 송이 우주 속 깊이 밀어 올릴 수 있을까 문득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다 때마침 오솔길의 다람쥐 눈빛에 취해 면경처럼 환한 마음일 때라야 들려오는 낭랑한 청청한 소리여 이 고요 지경을 여는 소리여 그러면 숲의 침묵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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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 - 사람의 등불시(詩)/고재종 2014. 5. 11. 12:09
저 뒷울 댓이파리에 부서지는 달빛 그 맑은 반짝임을 내 홀로 어이 보리 섬돌 밑에 자지러지는 귀뚜리랑 풀여치 그 구슬 묻은 울음소리를 내 홀로 어이 들으리 누군가 금방 달려들 것 같은 저 사립 옆 젖어드는 이슬에 몸 무거워 오동잎도 툭툭 지는데 어허, 어찌 이리 서늘하고 푸르른 밤 주막집 달려가 막소주 한잔 나눌 이 없어 마당가 홀로 서서 그리움에 애리다 보니 울 너머 저기 독집의 아직 꺼지지 않은 등불이 어찌 저리 따뜻한 지상의 노래인지 꿈인지 (그림 : 오치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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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 - 하동 포구에서 굽이굽이시(詩)/고재종 2014. 5. 11. 12:07
구례에서 하동까지 산첩첩 물첩첩으로 팔십여 리. 아침골안개 물안개 수작이 끝나면, 산은 산벚꽃 참진달래 홍도화를 우르르 터뜨려선, 그것들 의 새보얗고 붉디붉은 무작정 서러운 빛깔이거나, 강은 도요새 댕기물떼 새 흰고니 떼를 속속 날려선, 그것들의 신신하고 유유한 하릴없이 아득 한 날개짓이거나로, 시방 내겐 요렇듯이 가슴 벅차고 치미게끔 한통속이다. 강 아래 모람모람 들어앉은 마산면 피아골 화개면 집들, 산 위 구중심 처의 화엄사거나 쌍계사 절들을 보면, 어디가 이승이고 어디가 피안인 지, 나는 다만 봄볕 융융한 그 사이에서 저기 달래 냉이 자운영을 캐는 산사람들 본다. 저기 은어 쏘가리 버들치를 건지는 강사람들 본다. 저들 저렇듯이 산길 물길로 흐르며 마음엔 무슨 꽃을 피우는지, 어떻게 새는 날리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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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 - 방죽가에서 느릿느릿시(詩)/고재종 2014. 5. 11. 11:57
하늘의 정정한 것이 수면에 비친다. 네가 거기 흰구름 으로 환하다. 산제비가 찰랑, 수면을 깨뜨린다. 너는 내 쓸쓸한 지경으로 돌아온다. 나는 이제 그렇게 너를 꿈꾸겠다. 초로(草露)를 잊은 산봉우리로 서겠다. 미루나무가 길게 수면에 눕는다. 그건 내 기다림의 길이, 그 길이가 네게 닿을지 모르겠다. 꿩꿩 장닭꿩이 수면을 뒤흔든다. 너는 내 그리운 지경으로 다시 구불거린다. 나는 이제 너를 그렇게 기다리겠다. 길은 외줄기, 비잠(飛潛) 밖으로 멀어지듯 요요하겠다. 나는 한가로이 거닌다. 방죽가를 거닌다. 거기 윤기 흐르는 까만 염소에게서 듣는다. 머리에 높은 뿔은 풀만 먹는 외골수의 단단함임을. 너는 하마 그렇게 드높겠지. 일월(日月) 너머에서도 뿔은 뿔이듯 너를 향하여 단단하겠다. 바람이 분다. 천리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