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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 - 하동 포구에서 굽이굽이시(詩)/고재종 2014. 5. 11. 12:07
구례에서 하동까지 산첩첩 물첩첩으로 팔십여 리. 아침골안개 물안개
수작이 끝나면, 산은 산벚꽃 참진달래 홍도화를 우르르 터뜨려선, 그것들
의 새보얗고 붉디붉은 무작정 서러운 빛깔이거나, 강은 도요새 댕기물떼
새 흰고니 떼를 속속 날려선, 그것들의 신신하고 유유한 하릴없이 아득
한 날개짓이거나로, 시방 내겐 요렇듯이 가슴 벅차고 치미게끔 한통속이다.
강 아래 모람모람 들어앉은 마산면 피아골 화개면 집들, 산 위 구중심
처의 화엄사거나 쌍계사 절들을 보면, 어디가 이승이고 어디가 피안인
지, 나는 다만 봄볕 융융한 그 사이에서 저기 달래 냉이 자운영을 캐는
산사람들 본다. 저기 은어 쏘가리 버들치를 건지는 강사람들 본다. 저들
저렇듯이 산길 물길로 흐르며 마음엔 무슨 꽃을 피우는지, 어떻게 새는 날리는지.
나는 다시 꽃구름에 홀리고 새목청에 자지러져선, 우두망찰, 먼 곳을
보며 눈시울 함뿍 적신다. 그러다 또 애기쑥국에 재첩회 한 접시로 서럽
도록 맑아져선, 저 산 저렇듯이 사람들의 그리움으로 푸르러지고, 저 강
또한 사람들의 슬픔으로 꼭 그렇게 불었던 것을 내 아둔폐기로 새삼 눈치
라도 채는가 마는가. 시방은 눈감아도 저기 있고 눈떠도 여기 있는 한 세상 굽이굽이다.
지리산이여, 그러면 우리가 네 노루막이 위 청천에 닿고, 섬진강이여,
우리가 네 자락 끝의 창해에 이르는 길을 찾기는 찾겠는가. 가슴속의 창
날 우뚝우뚝한 것으로 스스로를 찔러 무화과 속꽃 한 송이쯤 피울지라
도, 가슴속의 우북우북한 것으로 깃을 쳐 죽을 때 꼭 한 번 눈뜨고 죽는
다는 눈먼새 한 마리쯤 날릴지라도, 생의 애면글면한 이 길,누구라서 그 예는 일렁거리지 않겠는가,
(그림 : 이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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