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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유 - 오래된 밭시(詩)/시(詩) 2023. 11. 30. 18:09
텃밭에 앉아 그녀가 김을 맨다
뾰족뾰족 올라오는 쪽파 부추 상추
이제 막 꽃을 피운 고추도 뽑는다
힘들었다는 듯 허리를 편다
소멸해 가는 기억을 부려 놓은 듯
밭고랑에 풀과 채소들이 뒤엉켜 있다
당신의 텃밭에는
쇠비름 몇 포기 명아주 몇 포기
가물가물 떨어져 가는 부스러기들
바람에 주억거리고 있다
평생을 논밭에 손발을 묻었으니
햇살 닿는 곳은 모두 그녀의 영역
희끗희끗 마른풀 날리며
비워지는 기억을 마저 털어내고 있다
가끔은 엄마 닮은 나를 엄마라 부르며
잇몸으로 웃어주는 해맑은 얼굴
그래도 아직
나를 상실하지 않아서 참 다행한 일이다(그림 : 이명복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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