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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 어머니의 정성시(詩)/시(詩) 2023. 10. 27. 19:11
간장에 꽃이 핀 걸 본 적이 있나요?
소금의 결정이 항아리 속에서 비늘처럼 반짝여요
간장에 꽃이 피는 해에는 운이 좋대요
어머니는 그 속설을 철석같이 믿었죠
콩을 삶고 짓이겨서 발효시킨 메주 한 덩이를
손 없는 날 받아서 장을 담그셨지요
바쁘게 살아가는 며느리에게도 보내고
애지중지 키운 딸에게도 보내셨어요
살아생전 하신 일이 자식 생각뿐이어서
봄볕에 익은 간장이 짭조름하게 익어가고
거친 손 마디마디에서 우러난 장맛은
세월이 가도 잊을 수가 없네요
어머니의 누런 장판 아랫목에선
곰팡이 핀 메주 뜨는 냄새가 나고
몽당빗자루로 하얀 곰팡이를 털던
어머니의 매운 손끝으로 세월을 뜨네요
(그림 : 정경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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