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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 그날의 풍경시(詩)/시(詩) 2023. 10. 25. 19:08
터널을 나온 철로에서 총총 뛰어노는 참새들
아직 어린 것들이다 이별을 경험하지 못했겠다
저 나이쯤에 우린 수업을 빼먹고 야간열차를 탔다
엄마의 놀란 눈이 데굴데굴 기차를 따라왔지만
우릴 태운 기차는 콧노래를 부르며 다른 세상을 향해 달려갔다
창가에 희끗희끗 초라한 마을 몇 개를 세워두고 기차는
우릴 바닷가 작은 역에 내려 주었다 우린 모래밭에 앉아
추위와 허기를 참으며 아무나 볼 수 없다는 일출을 목격했다
그날의 풍경은 내 영혼 깊은 곳에서 가끔 나를 깨운다
그 바다의 숨결 한 자락이라도 만나보고 싶은 날
나는 나를 데리고 그날의 풍경을 찾아 간다
풍경은 그 자리에 남아 또 다른 풍경을 만들고 있다
빈 의자가 홀로 앉아 있다
사랑을 금기로 삼고 살아야 하는 의자에겐
어떤 사랑의 기억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터널 끝에 또 다른 터널, 터널, 터널들
얼마나 많은 터널을 지나야만 나의 이별은 끝이 나는 걸까
귀가 멍해질 때마다 침을 삼켰다
기차가 지나가 버린 철로는 다시 참새들의 시간
어린것들이라 아직 죽음이란 낱말을 익히진 못했겠다
(그림 : 허필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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