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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득 생각했지요
몇 년 전에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를
그때가 꽃다운 나날이었는데 혀를 차다가
몇 년 후에 혀를 차고 있을 지금을 헤아리면
지금은 분명 꽃다운 날이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사는 나날이 꽃다운데 그것도 모르고
내게서 이미 가버렸다고 믿고는
어려서 누군가 꽃다웁다고 하면 흘려버리고
이제 꽃다웁다고 말해주지 않는데 불현듯 나는
꽃 지는 이 가을에
꽃같이 아름답고 꽃 같은 향기에 빠져
거처가 없는 힘센 사랑 쑥쑥 자라더니
더는 들어서지 못해
제 몸을 밀치며 제 몸을 밀치며
이 떨림을 달래려
꽃 지는 가을 공원으로 갔지요
몸이 잠겨 실눈을 뜨고 햇살을 마주 하니
피곤이 몰려와
몸을 뒤틀면 두두둑 타개지는 소리 그렇지요
좋을 때는 짧아서 가을 해도 짧고 공원은 텅 비고
그렇게 사라져가는 것들을 그리워하며
나날이 새로웠는데
나날이 꽃다웠는데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나는
꽃 지는 가을에 불현듯 귀를 세우고
오늘 이 쓸쓸한 사랑을
오래오래 묵혔다가 내게 어떻게 다시 찾아오는지
기다리지요
(그림 : 신제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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