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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현장에서 품을 팔았는지
낡은 봉고차가 식당 앞에
한 무더기 일당쟁이를 부려놓는다
땅거미가 하루의 노동에서 건져낸 저들을
척척 국숫집 의자에 걸쳐놓으면
시멘트 바닥으로 주르륵 흐르는 노을
하얀 거품을 저녁의 가장자리로 밀어내며
국수가 삶아지는 동안
그들은 종일 다져온 양념으로 서로를 버무린다
잘근잘근, 오늘의 기분을 씹으며
겉절이 한 잎을 반으로 찢는다
너무 길거나 폭이 넓은 슬픔은
적당한 어디쯤 젓가락을 쑤셔 넣고 주욱 찢어야
비로소 먹기에 알맞은 크기가 된다
반쯤 숨이 죽은 배춧잎처럼
하루가 치대는 대로 몸을 맡겼다가
국수 앞에 둘러앉은 사람들
아직은 어디에라도 곁들여지고 싶은
절여진 겉들(그림 : 이용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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