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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혁 - 꽃을 그냥 보냈다시(詩)/시(詩) 2023. 4. 6. 16:47
꽃 저문 자리가 어두웠다
안이 잠기고 있었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끼니처럼 왔다 갔다
머리카락이 빠져나가고
당신이 빠져나가고
벚꽃이 지는 일이
손금을 들여다보는 일이고
누군가의 손을 놓으며 서로를 건너는 일이고
아프지 않겠다고 돌아서는 속사정이고
서로가 서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인 줄도 모르고
찔레꽃 떨어지는 일에 한 시절이 깎이는 줄도 모르고
당신이라는 이름 하나가 희미해지는 줄도 모르고
꽃잎 하나 떨어지는 일이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가고
동사무소에 가서 사망신고를 하고
당신의 바랜 뒷모습을 쳐다보는 일인지도 모르고
목련꽃 한 잎이 지는 일에 봄빛이 흐려지는 줄도 모르고
당신의 생김새를 열어 보고
당신의 등을 쓰다듬던 일이
분홍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모르고
(그림 : 한부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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