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이 빠르게 마을의 지붕을 덮어 오던
그해 겨울 늦은 저녁의 하굣길
여학생 하나가 교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마을의 솔기가 우두둑 뜯어졌다.
풀밭을 흘러가는 뱀처럼 휘어진 길이
갈지자걸음을 돌돌 말아 올리고 있었다.
종아리에서 목덜미까지 소름 꽃이 피었다.
한순간 눈빛과 눈빛이 허공에서 만나
섬광처럼 길을 밝히고 가뭇없이 사라졌다.
수면에 닿은 햇살처럼 피부에 스미던 빛
고개 들어 바라본 하늘엔밤의 상점처럼 하나둘씩 별들이 켜지고
산에서 튀어나온 새 울음과땅에서 돋아난 적막이 길에 쌓이고 있었다.
말없이 마음의 북 둥둥, 울리며 걷던 십 리 길그날을 떠나온 지 수 세기
몸속엔 홍안의 소년 두근두근, 살고 있다.(그림 : 한영수 화백)
'시(詩) > 이재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재무 - 소년이었을 때 나는 (0) 2023.03.17 이재무 - 푸른 자전거 (0) 2023.03.17 이재무 -찔레꽃 (0) 2023.03.17 이재무 - 좋겠다 (0) 2022.12.21 이재무 - 무화과 (0) 2021.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