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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 겨울 둥지시(詩)/김왕노 2022. 12. 21. 07:54
공장에서 돌아온 동생의 옷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종일 기계를 닦고 조여도 늘 헐거워지고
녹슬어가는 동생의 꿈을 위해
겨울이라 손에 쩍쩍 달라붙는 몽키와 스패너로
오늘도 얼마나 이 악물고 닦고 조였을까.
편서풍이 아닌 바람이 사람을 헷갈리게 했다면서
퇴근하는 길에 갑자기 분 바람에 자전거 핸들이 꺾여
공장대로에 내동댕이쳐질 뻔했다면서
안도하는 동생의 말에도 기름 냄새가 났다.
일자리가 없어 야근도 줄어 살 길 막막하다는 말에도 났다.
피곤을 푸는 것은 잠이 제일이라며
서둘러 불을 끈 자취집의 하늘로 늦은 철새가 날고
잠들어도 동생의 몸에서 피어나는 기름 냄새는
겨울에도 지지않는 증오의 이파리 이파리였다.
자취방을 가득 채우고 밤새 서걱대는 증오의 이파리였다
(그림 : 김영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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