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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환 - 흘러도, 그 장맛
    시(詩)/시(詩) 2022. 12. 13. 16:08

     

    어스름이 든 표정들을 들여다보며

    가슴에 동여맨 조바심을 내려놓던 물 한 모금에

    늘 열려있는 사립문이야 그렇다 쳐도

     

    하루쯤 건너뛰어도 좋을 하루해를 등짐하고

    치워도 어질러진 모습을 한 외진 집 댓돌 위에

    좀 오랜 기억과 닮은 신발은

    그림자에 닿도록 허리춤을 무너뜨린 억척이고 억장이었습니다.

     

    손끝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의 봄 이른 나물에서 우리는 자라나고

    햇살 기댄 담장에서 허기 쫓는 눈빛으로 다투었지만

     

    밥맛 좋고 힘을 쓰는 데는 장맛보다 더한 것이 없다며

    담그는 손에 정성이 여간 아니던 붉은 고추에 감스름한 장독을 열어두고

    꾹꾹 누른 된장까지 턱 하니 볕에 내어놓으니 만석꾼이 어디 이럴까

     

    아무리 힘든 일 닥쳐도 뭔 걱정이랴

    맛나게도 쑥쑥 자라는 새끼들

    어디가 깨져 다쳐도 저 된장 한 주먹 눌러 붙이면 하고 가슴 다지는

     

    눈시울 뜨뜻해지는 저것들이라시며

     

    차곡차곡 눌린 관절을 재촉하는 손 걸음으로

    잠겨 운 바람을 회초리질 합니다

    아직도 거두어야 하는 전생의 죄가 크다며

     

    모자람도 그만한 것으로 돌아볼 줄 알아야

    안쪽 열린 가슴으로 웃을 수 있다고

    대처로 우리를 떠나보내는 손차양을 거두고

    지붕 하얗게 덮은 눈길을 돌아서며 빈 몸이 되는 어머니는

    원시림처럼 알 수 없는 힘으로 번져옵니다

    (그림 : 조창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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