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사가세요
성실함으로 열심히 살았어요
거짓말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남의 것 욕심내지 않았으며
무단횡단 한 번 하지 않았어요
계단을 오를 때는 왼쪽으로 올랐으며
어느 날부터인가 오른쪽으로 가라 해서
발걸음이 먼저 찾아가는 왼쪽방향을
신경 써서 고쳐 오르기도 했어요
경로 우대석은 늘 비워두어야 했기에
현기증에 몸 가누기 힘들어도
늘어진 손잡이 꼭 부여잡고 서 있었고
연말에 이웃돕기 성금도 꼬박꼬박 냈어요
아이 둘 낳아 건강히 키우며
명절 때 제사 때마다
직장 다니느라 바쁜 사람들 위해
장보고 음식 장만하며 기쁘게 살았답니다
더 이상 기대지 말고 자신을 찾으라 해서
이력서 꺼내놓고 한 줄 적었습니다
1984년 **상업고등학교 졸업
기억도 가물가물한 결혼 전 직장을 적어야 하나?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학생 때 자격증도 찾아야 하나?
이력서의 여백이 온몸으로 번지며
단 한 줄에 갇힌 내 인생이
떨이로 내어놓은 시든 야채 같아집니다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수일 - 빨래집게 (0) 2022.10.24 장문석 - 조금은 외로운 사랑 (0) 2022.10.24 권혁찬 - 낙엽을 쓸면서 (0) 2022.10.18 김안녕 - 대전발 영시 오십분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0) 2022.10.18 최지온 - 수국의 시간 (0) 2022.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