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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녕 - 대전발 영시 오십분을 기다리는 사람처럼시(詩)/시(詩) 2022. 10. 18. 06:54
엄마는 평생 달걀 한 꾸러미를 들고 걸었다
누가 멀리서 봤다면 아기라도 안은 줄 알았을 텐데
용산역 안 그는 휴대폰을 들고 뛰었다
바통을 쥔 것처럼 절박해 보였다
힘내세요, 라고 말했다면 좋았을까
머리통만 한 수박을 안고 가는 사람
머리통만 한 수박을 팔러 가는 사람
중얼거림을 들고 가는 사람
제 입을 버리고 걸어가는 사람
마스크가 제 얼굴이 된 사람
구름을 쓰고 가는 사람
고양이 걸음을 흉내 내며 가는 사람
끝내 사람이길 포기하고 걷는 사람
기차를 타러 나왔는데 행선지가 생각나지 않아
가만히 기다린다
대합실은 소란과 고요를 반복한다
이럴 때엔 헛기침이 소용 있다
지금 몇 시더라,
시계가 없는데도 손목을 들여다보며
올 사람이 없는데도 이쪽저쪽을 돌아보며
돌아갈 곳 있는 사람처럼
행선지를 떠올린다
(그림 : 남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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