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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윤설 - 기차 생각
    시(詩)/시(詩) 2022. 8. 17. 20:09

     

    슬픈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나는 기차가 되어 있다

    몸이 길어지고 창문의 큰 눈이 밖으로 멀뚱히 뜨여 있다

    나는 길고, 달리다 보면 창밖으로 식구들이 보인다

    어쩌자고 식구들은 추운 민들레처럼 모여 플랫폼에서

    국을 끓이고 있는지

    내가 지나가는데도 나를 발견하지 못하여 기다리고만 있다

     

    나는 슬픈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네가 서 있는 곳을 지난다

    풀지 않은 짐가방처럼 너는 늘 혼자다

    내가 가려던 소실점 같기도 하고 신호등 같기도 한데

    나는 너를 지나친다

    그러면서도 너는 아주 많이 늙어서 내 할아버지만큼 오래 살아서

    그런데도 네가 나의 사랑인 것을 쉽게 알아본다

     

    슬픈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친구들이 친구로 건너지 않는 건널목을 지나고

    하늘이 파래서 조각조각 깨지는 어느 자오선의 가장 뜨겁고 아름다운 부근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지나온 곳들이 나의 몸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빗방울들이 금세 차창 가득 별처럼 와 뒤덮이고

    나의 차오르는 눈물이 내 몸의 일생을 지나는 것을 지나친다

    슬픈 생각을 따라 가다보면

    당신들의 육체를 길게 관통하며 강을 건너가고 바다의 슬픔을 건너

    내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림 : 김지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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