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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희 - 어느 집 낡은 담장 너머로시(詩)/시(詩) 2022. 8. 7. 21:30
초록에 밑줄 긋는 사이
길섶 망초꽃 부용당을 수놓고 있다
그녀의 옛 숭문동에 이르러
풀물 배인 바람을 듣는 신발 두 짝
꽃신 자국인 듯 토끼풀 간간이 펼쳐있다
문향한 여백 너머 마주 오는 먼 눈빛 하나
이곳쯤이었을까
조카들 더불어 천진하게 시문에 젖던 곳
남쪽 강 물결지듯
산딸나무 흰 모시 쓰고 마실 가는데
어느 먼 여로에 뒤설레던 그녀
죽어서도 살아있는 삶 하나 꺼내 든다
봉인된 시간을 곰곰이 걷는 유월.
어느 집 낡은 담장 너머로 얼굴 내민 접시꽃
묻고 싶은 말 몇쯤 마음에 둔 채
오동나무 그늘 밀며 돌아오는 해거름
그녀 수틀 안 꽃들 길을 내고 있다
(그림 : 박연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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