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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리 - 백년해로
    시(詩)/시(詩) 2022. 7. 27. 17:45

     

    물비늘이 바다 한가운데에 모여 길을 이룬다

    붙잡고 싶은 시간이 있었지만

    부러진 여름의 손톱들로 거기 남아 있고

     

    젖은 옷을 모래사장에 펼쳐 두고

    물수제비를 뜨는 아이들, 돌은

    자신이 닿은 자리마다 몸을 새기고 가라앉는다

     

    그늘진 풀밭에서 이끼가 자라나고

    어디선가 강아지풀을 꺾어 와

    옆으로 누워 있는 나의 뺨을 간지럽히는 당신

     

    등대에 불이 켜지고

    물속으로 떨어지는 그림자가

    사방으로 물방울을 흩뿌렸다가

    잔잔한 물결이 되어 돌아간다면

     

    저것은 누가 버린 기분일까

    여유롭고 근사한 날에

    이곳의 평화는 한순간에 깨질 것이고

    나는 당신과 아이들을 데리고 여길 떠나려다

    질퍽거리는 땅에 맨발이 파묻히겠지

     

    우리는 발목이 잘린 사람처럼

    어디로도 달아날 수 없이

    다시 바다를 향해 얼굴을 돌리고

     

    수평선은 불안 속에서 몰래 훔쳐보는 실눈처럼

    언제나 희미한 순간만을 전부로 알았다

     

    당신이 일어나 보라고 나의 왼눈을 벌린다

    입속에 과일을 오물거리는 아이들이 발바닥을 긁고 있다

     

    가만히 여름이 부서지고 있는 오후

    우리가 더 아름답게 지워질 때까지

     

    파도가 빛을 집어삼키고 방파제를 향해 달려온다

    (그림 : 정창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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