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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리 - 마지막 화전민시(詩)/시(詩) 2022. 6. 27. 13:31
낱장으로 찢긴 달력의 숫자들
벽을 괴이고 있다
반세기 전의 벽지에 반세기 넘은 정 씨가 앉아있다
어둠 속에서 들춰낸 콩깍지 부여잡고 낱알을 가린다
수많은 산새들과 호칭도 없이 날아간 이름
1968년 화전정리법에도 정리되지 않은 사람
아버지 봉분 곁에
철철이 꽃을 들이고
더덕 도라지 들깨 종일 깨알 같은 말을 쏟아낸다
식솔들은 산 아래 세상으로 보내고
스스로 길을 내며
빽빽한 나무의 측근이 된다
산을 감당할 때까지는 하산하지 않겠다고
아버지의 매장지에서
홀로 낡은 집을 떠받들고 있다
언제 산에서 나올 거냐고 물으면
해가 넘어간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림 : 김동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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