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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찬 - 모종을 고르며시(詩)/시(詩) 2022. 6. 13. 16:33
어제 동면을 면한
텃밭의 기지개가
이른 새벽부터 불호령이다
해가 중천에 이르렀다고
꽃들이 내려앉아 흙 멀미를 한다고
알아들었다고
얇은 신발 골라 신고는
손을 꼽으며 모종을 고른다
열매로 귀결될 과채모종이나
뿌리로 잉태될 근채모종들이
농부의 셈을 흩트리는 봄
어림잡아 집어 들고
심다보면 아쉬운 듯
몇 포기 더 꽃아 둘 걸 신음하듯
종종걸음이 모종가게로 향한다
그래도 서운해
흠뻑 적신 흙살을 만지며
열리고 안을 것들을 점치고 있는
농부의 마음은
아들딸이 잘되라고 기원하는
여린 가슴 그대로다
모종을 고르며
봄을 심듯
내일도 함께 심는다.
(그림 : 성하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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