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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 밥물 눈금시(詩)/손택수 2022. 1. 23. 14:03
일인 가족 밥물 눈금을 찾지 못해 질거나 된밥을 먹는 일이 잦더니
이제는 그도 좀 익숙해져서 손마디나 손등,
손가락 주름을 눈금으로 쓸 줄도 알게 되었다
촘촘한 손등 주름 따라 밥맛을 조금씩 달리해본다
손등 중앙까지 올라온 수위를 중지의 마디를 따라 오르내리다 보면
물꼬를 트기도 하고 막기도 하면서
논에 물을 보러 가던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저녁때가 되면 한 끼라도 아껴보자
친구 집에 마실을 가던 소년의 저녁도 떠오른다
한 그릇으로 두 그릇 세 그릇이 되어라 밥국을 끓이던 문현동
가난한 지붕들이 내 손가락 마디에는 있다
일찍 철이 들어서 슬픈 귓속으로
봉지쌀 탈탈 터는 소리라도 들려올 듯,
얼굴보다 먼저 늙은 손이긴 해도
전기밥솥에는 없는 눈금을 내 손은 가졌다'시(詩) > 손택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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