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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란 - 눈사람 만들기시(詩)/시(詩) 2022. 1. 10. 17:06
얼마나 마음을 단단히 뭉쳤는가가 이 작업의 묘미입니다
움켜쥘 것 없는 손은 생략해도 무방합니다
발이 없어도 어디든 가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좀 더 풍성한 은유가 따라올 것입니다
모자를 머리 위에 올려놓아 보세요
햇빛의 사적인 감정을 이해하게 됩니다
코는 적당히 비뚤어지는 게 좋습니다
앞뒤 없이 한없이 둥글기만 한 것들에게 모서리가 생길 것입니다
맨땅을 뒹굴게 하고 싶겠지만 참아야 합니다
흰 옷에 얼룩을 묻히는 것은 불안을 사랑하는 일
점점 얼어붙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니까요
웃을지 울지는 알아서 결정하세요
어차피 보여줄 건 텅 빈 미래인 걸요
우리는 사라질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아닌 것의 완성을 소망하며 쓸데없이 한 시절을 바칩니다
보이나요?
미치도록 뜨거운 심장 때문에 전 생애가 무너져 내리는 한 사람
당신의 솜씨입니다
(그림 : 이동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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