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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천 - 산 81번지시(詩)/시(詩) 2021. 8. 1. 14:59
납작 보리쌀 대승 한 되
종이 봉지 속에 담아 오른팔로 감아 들고
연탄 속 꿰뚫은 새끼줄
왼손 아귀 감고 잡아
한숨 닮은 긴 숨을 내쉬어 호흡을 고른다
검은 곰팡이 짙은 녹색 이끼
곰보 자국처럼 눌어붙은 슬레이트 처마 끝이
머리끝을 스치듯 닿을 듯 말 듯
비가 오는 날이면 저 알아서 물길이 되어버린
미로 닮은 비탈진 골목길
그리고도 울퉁불퉁 돌계단 몇십 개 더 올라
30촉 백열등이 대롱이는 나름 보금자리
아궁이 옆 사과 궤짝 연탄 한 장을 새끼 채 풀어 놓고
장기판 반쪽만 한 툇마루 위에
잠든 아기 내리듯 납작 보리쌀 봉지를 세운다
봉천동 산 81번지
남쪽 하늘 바라보고 땀을 훔칠 때
관악산 넘어 부는 늦가을 찬바람
열일곱 내게 무슨 말을 했던가(그림 : 김정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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