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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숙 - 나 어릴 적엔시(詩)/시(詩) 2021. 7. 26. 21:31
고등동 입구 벙어리 방앗간 옆
성무반점에서 짜장면 먹던 날엔
하루 종일 윗 입술에
까만 춘장 묻히고 자랑하고 다녔다
이웃집 아낙네들 수군거리던
작은댁이라는 빨간 벽돌 양옥집
창가에 레이스 달린 거튼이 아름답고
폭신폭신한 침대도 근사해보여
나의 장래 희망란에 “첩‘이라 적어놓고
엄마한테 종아리 피나도록 맞았다
엄마가 참깨 볶는 날엔
부뚜막 깨소금 단지에 들락거리며
한 줌씩 입에 넣고 씹고 다녔다
하루 종일 내 몸에선 고소한 냄새 풍겼다
다음 날엔 엄마가 참깨 가루에
고춧가루 섞어 놓았다
(그림 : 이혜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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