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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다랗게 곧추 자란 태양이 지붕 위로 어깨를 들이민다
그녀가 볕 잘 드는 목에 앉아 해바라기할 때
쪽창은 스테인드글라스 아플리케처럼 번득인다
햇볕 한 장이 타월처럼 바닥에 포개지면
그녀의 그림자 언저리가 개켜진다
싱크대가 갸우뚱하게 뒤꿈치를 들었으므로
신발장도 역삼각 허공을 업고 있다
지나는 구름에도 건들건들 흔들리는 천정
식구의 쪽잠도 꿈에서만큼은 훤칠했을까
뻐근한 등짝을 젖히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무방비로 흘러내리던 골목들과
무시로 계단을 오르내리던 땡볕에 대해,
안테나는 소문을 길게 뽑아 올린 채
구제의류 같은 슬픔을 수신하고 있다
그 너머 초등학교 가로수들은 띳장,
우듬지에서 지빠귀 떼 은방울 깨트리면
한 뼘의 운동장에서 종일 구른다
미니어처 행인들, 체스놀이처럼
보도블록을 바꾸는 인부들
모두 얼굴이 지워져 있다
희망 하나쯤 가맣게 떠올라 여기에 닿는다면,
한 줌 바람이 부풀어 무중력이라면 어떨까
그녀가 가없는 장대로 휘저어본다
태양이 푹 수그러진다
(그림 : 우창헌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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