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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로 테두리가 그어진 마을이 있다
그 옛날 배고픈 화공이 섣불리 그은 선(線)이라
한여름 장마철에는 가끔 넘치기도 하는 강
딱 삼 년만 빌려 쓰자고 온 마을이었는데
강은 제멋대로 자라고 우물들이 불시에 솟아나는 바람에
사람들 모여 사는 마을이 되었다
산들은 크기에 따라 서서히 마을에서 쫓겨났다
큰 산은 가끔 구름을 저장하는 곳으로
작은 야산엔 죽은 사람들을 묻었다
최초의 이 마을은 구륵법으로 생겨났다
처음에 하나의 작은 움막이었을 것이고
이 안에 들어가서 가족이 되었다
화전 밭에 불을 놓고 검은 선 안에는 감자를 채웠다
마을에 몇 채의 집이 생기면서
대들보를 이어 긋고 오랫동안 사람들로 채색되었다
담과 우물, 구륵법 안에서의 내 얼굴은 익숙하다
담 안은 물로 채색이 되면서
수종식물이 생겨났다
뒤란의 자두도 씨앗 하나 구륵법으로 숨기며 익어갔다
경사진 밭이 수평으로 이어지고
테두리 긋던 선을 땅에 묻고
채색된 논과 밭은 진화되어 다시 신생의 울음으로 태어났다
그림이 오래되면 선만 남고 희미해지듯
최초의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여전히 강물은 짙은 선으로 휘감아 돌고 있고
그 옛날 사람들이 들 때보다
마을은 그림보다 더 희미해져 간다
구륵법 (鉤勒法) : 구륵전채법(鉤勒塡彩法)의 준말로, 구륵착색법(鉤勒著色法)·구륵선염법(鉤勒渲染法) 또는 쌍구법(雙鉤法)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당대(唐代) 이후 윤곽선 없이 직접 엷은 색채로 여러 겹 칠하여 형태를 나타내는 몰골법(沒骨法)이 등장하자 이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윤곽선을 중시하는 종래의 기법을 구륵법이라 일컬었다.
구륵은 윤곽선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견실한 형태 또는 밑그림을 견고하게 그린다는 의미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구륵’이라는 용어는 설색화(設色畫)에서 사용되며, 주로 화조(花鳥)나 화훼(花卉)의 기법을 구분할 때 쓰인다.
북송대(北宋代)에 형성된 황씨체(黃氏體)의 기본 양식을 이루었고, 정교하고 화려한 궁정취(宮廷趣) 짙은 원체풍(院體風)의 화조와 화훼를 그릴 때 많이 애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시대의 고분벽화나 고려시대의 불교회화와 같은 실용적 채색화의 기법으로 많이 쓰였으며, 조선시대의 화조와 화훼화에서는 구륵법과 몰골법의 절충양식이 사용되었으나 몰골법에 비해 큰 세력을 누리지 못했다.
조선 중기 이영윤(李英胤)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화조도」 3점은 이 기법을 사용한 대표적인 예이다.
(그림 : 김대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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