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택수 - 녹슨 도끼의 시시(詩)/손택수 2021. 4. 9. 13:31
예전의 독기가 없어 편해 보인다고들 하지만
날카로운 턱선이 목살에 묻혀버린
이 흐리멍텅이 어쩐지 쓸쓸하다
가만히 정지해 있다 단숨에 급소를 낚아채는 매부리처럼
불타는 쇠번개 소리 짝, 허공을 두 쪽으로 가르면
갓 뜬 회처럼 파들파들 긴장을 하던 공기들, 저미는 날에 묻어나던 생기들,
애인이었던 여자를 아내로 삼고부터
아무래도 내 생은 좀 심심해진 것 같다
꿈을 업으로 삼게 된 자의 비애란 자신을 여행할 수 없다는 것,
닦아도 닦아도 녹이 슨다는 것
녹을 품고 어떻게 녹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녹스는 순간들을 도끼눈을 뜬 채 바라볼 수 있을까
혼자 있을 때면 이얍 어깨 위로 그 옛날 천둥 기합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오기도 하는 것인데, 피시식
알아서 눈치껏 소리 죽인 기합 소리는 맥이 빠져 있기 마련이다
한번이라도 꽉 짜인 살과 살 사이의 틈에 제 몸을 끼워 맞추고
누군가를 단숨에 관통해 본 자들은 알리라
나무는 저를 짜갠 도끼날에 향을 묻힌다
도끼는 갈고 갈아도 지워지지 않는 묵향을 그리워하며 기꺼이 흙이 된다
뒤꿈치 굳은살 같은 날들 먼지 비듬이라도 날리면
온몸이 근질거려 번쩍 공중으로 들어 올려지고 싶은 도끼(그림 : 홍경표 화백)
'시(詩) > 손택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택수 - 있는 그대로, 라는 말 (0) 2021.07.18 손택수 -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0) 2021.05.12 손택수 -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고독 (0) 2020.08.16 손택수 - 송아지 (0) 2020.08.16 손택수 - 저녁을 짓다 (0) 2020.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