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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방 윗목 헌 가마니때기에선 두엄 냄새가 났다
두엄 속 씨고구마에 물을 주던 밤이었다
처마 밑 고드름이 한 자쯤 더 길어진 밤
할아버지 옆에선 송아지가 새근거리고 있었다
어미 뱃속에서 툭 떨어질 때 숨을 쉬지 못해
인공호흡을 시켰던 송아지
예정보다 일찍 나온 송아지는 유난히 야위어서,
방에서 사흘 낮밤을 꼬박 곤하게 새근거렸는데
어미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은 젖먹이
그 보드라운 털에 볼을 부비고 있으려면,
씨고구마 자줏빛 싹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 고구마 싹처럼 송아지 머리에도 머잖아 뿔이 돋겠지
뿔이 돋으면 그도 어미소처럼
사흘같이 고구마 밭을 매러 가야 하겠지
눈꺼풀을 쓸어내리며 다독다독 지붕을 덮는 눈 속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노라면
잠 못 드는 어미의 쇠방울 소리에 답이라도 하듯
어메ㅡ물기가 많은 코울음 소리를 냈다(그림 : 김동성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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