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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옥 - 아랫목에 대한 기억시(詩)/시(詩) 2021. 3. 22. 11:58
팔뼈 차갑게 얼어드는 동지섣달
여자는 언 손 마다하지 않으며
아랫목에 제 몸보다 무거운 솜이불
푹신하게 깐다
차가운 겨울바람으로 꽁꽁 얼었을
남편과 아이들 돌아오는 길 든든하라고
황토방 아궁이 가득 사랑을 지핀다
아이들에게 따스한 아랫목 내주고
성에꽃 핀 윗목 지키면서도
늘 따스한 미소 띠시던 아버지 얼굴
불빛 속에 넉넉하게 펼쳐져 있다
꽃샘추위 차가운 바람 속의 십 리 길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안온함에 기대고 마당을 들어서면
새파랗게 언 몸 녹이라고
늘 윗목 내주던
아버지 넉넉한 손
험한 삶 굽이굽이를 지켜주셨다
아버지도 떠나고
매캐한 고추 연기도 사라졌지만
찬 윗목을 지키면서도
늘 따스한 품 열어주시던 아버지
마음의 깊이 아직도 헤아리지 못한다
언 몸 녹일 방 하나 없다고
꽃샘바람처럼 투덜거릴 때마다
밤새 젖은 장막으로 아궁이에 불 지키던
아버지를 덮치던 생나무의 매캐한 연기
오늘 내 눈물샘에 자꾸 넘친다
(그림 : 박찬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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