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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신 - 사다리를 오르면 또 사다리시(詩)/시(詩) 2021. 3. 1. 12:01
아무나 오르지 않죠
허공에 그으면 부서지는 말들
중간쯤, 양손으로 기둥을 잡고
고개 들어 사방을 두리번거리죠
발을 떼면 다시 처음
충분히 지친 하루는 계속해서 층계
한 걸음 또 한 걸음, 끝나지 않는 오늘의 일기
흔들린다는 것은 깜빡이는 필라멘트 같죠
한 치 앞도 모르고 달아났다 다시 되돌아온 빛처럼
눈앞이 캄캄해지죠, 눈앞이 어질어질하죠,
아시잖아요, 으슬으슬 식은땀으로 온몸 흥건해지면
지상의 모든 날씨들도 축축해진다는 것을요
시시각각 악몽을 꿈꿨던 당신의 귀와 눈
간헐적으로 심장은 쿵쾅거리고
한 계단 오르면 또 한 계단
다리는 후들거리고
연신 욕지기는 목울대를 치고
나는 이제 바닥을 향해 올라갈래요
테이프를 뒤로 돌리듯 말예요
결가부좌한 노승의 자세는 꼿꼿하지만 단정하죠
연무, 숨소리가 짙게 깔릴 때 땅을 보지 마세요
그러니까, 어디가 시작이고 무엇이 끝인가요
아슬아슬,
손을 놓으면 절벽
위를 봐도 아래를 봐도
도무지 사다리와 사다리
그런데, 사다리는 왜 다리가 두 개 뿐이죠?
(그림 : 홍영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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