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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 때문에 찢어버린 문구가 어느 날 늑골처럼 아늑해질 때
영원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보다 더 아름다울 때
그런 날이 누구도 모르게 사라지고 싶은 날
어디론가 계속 옮겨 다니는 오늘이 지나 아직은 행복한 내일의 마음을 끌어다 쓰고
발바닥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며 내 기분을 거기 전부 적어둔다
나눠준 옷의 이름을 확인해보면 등 뒤로 밀려드는 얼굴들
며칠 일찍 찾아올 행운을 예감하는 것처럼
나도 혼자 뛰어내릴 수 없는 절벽쯤은 가지고 있다고 말해보지만
허나 발을 구르면 빛나는 비명들에 대해
가만히 앉아 기다리면 누구도 불러주지 않는 지난날에는 숙취보다 오래가는 우울함에 대해
땀 흘리며 조금 가벼워지는 몸으로
어제, 꼼꼼하게 적어둔 메모 속
어떤 것들은 영원히 피할 수 없는 예언이 되어도 좋겠다
아직도 묻지 못한 말이 있었다면 그때는
이미 내가 먼저 떠났다고 말해야겠다
(그림 : 신재흥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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