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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철거된 무허가 소주집은 경포 해변의 끝이었다
이름이 없고 사방이 유리창이어서 그냥 유리집이었다
한 뼘 더 변두리인 사근진이 잘 보였다
경포에서 왼쪽으로 지척인 사근진은 사기장수가 살았다던 나루
여름해변의 가장자리에 놓여 경포도 아니고 그 너머도 아닌
가을의 바닷가
모래로 그릇을 굽던 시간은 이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곳
사라진 나루에는 한 짐 가득 사기를 지고 깨지지 않도록 걷던 사람이
있었을 테지 그가 걸었던 변두리가 없었더라면
파도가 자꾸 넘어져 깨어져도 이렇게 고요만 쌓이는 오후는 없었을 테지
사근진이 없다면 바라볼 경포도 없었을 테지
불 속으로 뛰어들던 침묵들로 불을 빚어내던 아름다운 변방 사근진
사근진 - 강원도 강릉시 안현동에 있으며 길이 600m, 24,000㎡의 백사장이 있는 간이해변으로 경포해변과 붙어 있습니다. ''사근진''이란 이름은 옛날 삼남지방에서 사기를 팔러 왔던 사람이 이 곳에 눌러 앉아 생활하면서 조그마한 배 한 척으로 고기도 잡고 사기도 팔았다하여 “사기장사가 살던 나루”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림 : 구복화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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