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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휘 - 가슴 선반시(詩)/심재휘 2020. 2. 15. 16:24
가슴 언저리에 선반을 달고 그곳에
당신을 위한 차 한 잔을 얹어드리지요
식기 전에 와서 드시면
나는 강바닥에 닻을 내린 작은 배
흘러가는 강물에 묶인 몸 일렁거려도
흘러간 것들을 돌아볼 수는 없어도
내가 읽는 책 속에서
새들은 씨앗인 듯 몇 개의
식지 않은 글자들을 물고 가겠지요
어느 훗날 쓸쓸한 거리에서
차를 다 마신 표정의 나무를 만난다면
가지 끝에 달린 꽃의 문장이
내 표정을 만날 때
당신이 마시고 간
차 한 잔의 인사라고 생각할게요
나는 오늘도
가슴에 선반을 달고 그곳에
차 한 잔을 올릴게요
매번 식어만 가는 차일지라도
차를 우리는 일은 우리의 일이잖아요(그림 : 설종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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