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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휘 - 낱.말.혼.자시(詩)/심재휘 2020. 6. 22. 17:28
손톱깍이를 찾으러 서랍을 열어놓고는
손은 왜 바싹 마른 만년필에 가닿았을까
긴 편지를 쓰던 날들이 서랍 구석에 처박혀 있는
오늘은 하필 이토록 백지 같은 유월이고
뚜껑을 열고 닫는 일들을 지겹게만 여기고는
버려두었던 만년필
가여워하게 될 줄을 몰랐다
만년필에 잉크를 넣고 혼자라고 쓴다
몇 번의 빈 혼자 끝에 까맣게 선명해지는 혼자
혼 자와 자 자를 가깝게 붙여 쓰면서 자꾸 소리 내보면
뜻은 사라지고 목소리와 필체로만 남는 혼자는
처음 보는 낯선 자세 같기만 해지다가
만져질 것도 같은 따뜻한 몸들이 된다
종이 한 바닥 낭자한 혼 자와 자 자는
제 몸에는 깊숙이 스미되 끝내 서로 번지지 못하는
수천 년이 가도 변함없는 생의 자세
아무리 붙여 써봐도 결국 혼자가 되는
만년필로 써보는 혼자라는 낱말(그림 : 서상익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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