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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섬을 돌아가면 인어를 만난다
귀 밝은 사람은 노래를 듣기도 한다
모래밭에 남겨진 숱한 약속들 바다에 씻겨
갈매기가 따라 부르고 파도가 장단을 넣어
광안대교 기나긴 다리마다 한 소절씩 새겨져
다리 밑을 지나다보면 노랫소리가 들려온다고
어느 취한 뱃사람이 말했다는데
얼마 전 그 곳을 지나며 나도 언뜻 들은 듯하다
늙은 해녀처럼 인어는 떠나고 이름만 남아
교각을 스치는 바람소리였는지 갈매기 울음이었는지
곰곰이 되새겨보니 해 지던 어느 바닷가에서
노을을 따라가며 그대가 부르던 노래
먼 바다를 떠돌다 마지막 남긴 물결소리였는지
옛 노래가 귓가에서 종일 파도치는 날
한결같이 기다려주는 인어를 만나러 섬으로 갈까
사람들 별빛처럼 멀어지고 노래방도 시들한 계절의 끝 무렵
희미해진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싶어지는 날
해운대 포장마차에 들러 소주잔에 바다를 담아 볼까
객쩍은 농담으로 툭툭 마음을 털어내고
다시 추억을 만들려는 사람처럼 밤바다를 걷다가
이제는 동백도 지고 없고 섬도 아닌 섬으로
문득 생각난 듯 발길을 돌리면
한사코 파도가 매달리는 바위 모퉁이
인어의 울음소리 아릿하게 맴돌 듯한 밤
(그림 : 전희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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