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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누군가가 기다려지는
얕으막한 산등성이 있어 고향이다.
그 산등성 너머 흰 연기를 토하고 달리던 하오 두시
완행열차의 기적이 있어 고향이다.
기적 끊긴 적막한 겨울 오후, 긴 날개의 그림자를 땅위에 드리우며
하루 종일 하늘을 맴돌다가 사라지던 소리개가 있어 고향이다.
소리개를 쫓아 불현듯 줄을 끊고 산 너머로 달아나버린 연, 그 연을
찾으러
함부러 뛰어다니던 언덕이 있어 고향이다.
머리 희끗희끗
한번 떠난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은
멀었다.
먼 항구의 불빛과 낯선 거리의 술집과 붉은 벽돌담과 교회당의 뒤뜰
을 걸어서
그 언덕에 다시 섰는데
왜 이제는 이다지도 기다릴 사람이 없는가
고향은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어
고향이다.(그림 : 김지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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